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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F

카쉬파의 숨겨진 기록 #1 추적

by happy-hour 2019. 3. 2.



#1. 추적 글:99/그림:raten









"마귀의 리더가 사라졌다."

독헤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니프 케이는 서류 더미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갑자기 집무실에 찾아온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고로 들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개줄의 리더는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쉬파라는 집단에서 익힌 나름의 처세술이었다.
때론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다.

"히카르도 말입니까?"

그는 내심 새로운 정보를 기대하며 부수장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독헤드는 아무 말 없이 품 안에서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독헤드의 입에서 한숨처럼 새어나온
연기가 개의 형상을 잠시 이루었다가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카지노에서의 내분 때문이군요. 거긴 완전히 박살나서 제대로 된 흔적을 찾으려면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판입니다."

독헤드는 여전히 아무 말없이 스니프 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 눈빛.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힘든 저 심연이야 말로 간부들이 독헤드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마치 자신의 머릿 속을 샅샅이 뒤져보는 듯한 부수장의 눈빛과 마주치자, 스니프 케이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꽉 쥔 손에 땀이 배이는 것이 느껴졌다.

"다크 시티."

독헤드의 말에 스니프 케이가 눈을 반짝였다.

"비밀 통로와 이어진 곳에 '사도의 알'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다. 우선 히카르도를 찾아. 그리고 알을 회수해라."

사도의 알! 마계의 부를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다는 로열 카지노의 욤이 위험을 무릅쓰고 손에 넣으려던 물건이었다. 약육강식이 당연시되는 이곳에선
거대한 마력이 담겨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엇이든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스니프 케이는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욤과 다르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을 유품으로 가져갈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누구나 탐낼 만한 목표를 쫓는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고양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엔 추격자 니우와 함께 움직이는 외부인들이 있습니다."
상기된 표정을 가라앉힌 스니프 케이가 말했다. "그것들이 끼어든다면 골치 아파질 텐데요."

"칙사가 이미 손을 써놓았다." 독헤드의 곰방대가 재차 연기를 뿜어냈다. "전투조와 약탈조 셋을 파견했다고 하더군."

"셋이나요? 조금 과한 반응이군요."

스니프 케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마계인들이 두려워하는 카쉬파의 힘은 물론 대부분 어비스를 이식한 간부들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 거대한 조직이 문제 없이 굴러가는 데는 전투조와 약탈조를 비롯한 하위 조직원들의 역할이 더 크다. 워크맨이 파견한 전투조와 약탈조의 규모는
로열 카지노에서 일어난 내분 이후 남은 전력의 거의 절반이었다. 독헤드는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마지막으로 긴 연기를 뿜어낸 곰방대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시간이 없다. 다른 조직들도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날파리들이 더 꼬이기 전에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개줄을 풀죠."

독헤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만약에 히카르도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개줄의 방식대로." 잠시 침묵하던 독헤드가 대답했다.

그녀가 떠나자 집무실의 두꺼운 나무 문이 스스로 닫혔다. 혼자 남은 개줄의 리더가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스니프 케이는 생각에 잠긴 채 땅을 매만지고 있었다. 무언가 흔적을 찾는 것 같았지만, 사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쫓는 자의 가장 큰 미덕은 언제나 기다림에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신중을 기하는 일처리로 언제나 성공을 이끌어내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이던 그가 첫 추적을 나서던 날처럼.

독헤드의 명령을 받은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동원 가능한 조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밤낮으로 흔적을 쫓았다. 다른 단체들의 이목이 쏠려있다는
독헤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희미해져가는 마력의 흔적을 더듬으며 추적하는 동안, 스니프 케이는 멀찍이서 자신들을 주시하는 시선을 몇 번이나 느꼈다.
아마도 고리타분한 테라코타나,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라면 관짝이라도 볼 고대 도서관의 마법사들이겠지. 독헤드는 워크맨이 손을 썼다고 했지만,
어쩌면 조직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수호자들이거나 서클 메이지의 소환사들일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할렘 끝까지라도 추적해 쫓아냈겠지만,
당장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의 히카르도를 쫓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까.

"젠장..."

다크 시티에서 이어진 흔적을 쫓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을씨년스럽게 솟아오른 마천루였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마천루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부하들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그들은 개줄 내에서도 고르고 고른 자들이었다. 전투조만큼은 아니더라도, 목표를 척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훈련받은 자들.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사이 더 커진 것 같은 금색의 별은 불길한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얼마 전 저 곳에서 넘어온
괴물들이 밤의 마천루를 장악하고 있지만 않았더라도, 사흘 간의 노력은 이미 결실을 봤을 것이다. 그들이 쫓아온 흔적은 명백히 밤의 마천루 안으로 향해
있었다. 주변 어디에도 다시 나온 흔적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옆을 돌아보니 짧은 머리의 부관이 굳은 표정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관의 얼굴에는 불안해하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어쩌긴. 여기까지 와서."

스니프 케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빗어 넘겼다. 등 뒤에서 자신을 재촉하는 듯한 수십 개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목표를 앞에 두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언젠가 잡고 있던 개줄을 놓치고 물어뜯길 것이다. 과거에 어비스 이식을 자처했던 그가 전대의 리더를 마나로 돌려보냈던 것처럼.

"짝을 지어라. 넓게 흩어져서 한번에 들어간다."



중심으로 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낀 건 마천루의 안개 속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안개 때문에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지만, 분명 부관의 목소리였다. 비명소리를 신호로
삼은 것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던 안개 속에서 무언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니프 케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앞으로 굴렀다.

날카로운 발톱에 걸린 어깨의 살점이 뭉텅 뜯어져 나갔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마력이 담긴 지팡이를 휘둘렀다. 고통에 찬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며 안개 속에서 뭔가 끈 떨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스니프 케이는 자신에게 달려든 것을 바라보았다. 네 발 짐승과 새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의 괴물이었다. 지팡이에 가격된 복부는 깊이 패여 있었고,
두 쌍의 다리와 한 쌍의 날개가 바닥을 날기라도 할듯 힘없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스니프 케이님!"

자신의 뒤를 따르던 부하가 소리쳤다. 멍청한 것! 순식간에 부하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스니프 케이는 그의 입을 틀어막는 대신 위험이 감지되는 방향으로
그를 밀치는 쪽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빠진 부하의 표정이 보였고 이내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마천루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스니프 케이는 자신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안개 속에서 괴물들이 끊임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고통에 찬 비명은 계속해서 사방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때론 멀리서, 때론 가까이에서. 부하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그는 서둘러 마천루의 중심으로 향했다.
모든 비명을 집어삼킨 안개 속의 괴물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스니프 케이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에 들이차는 열기는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마력을 따라 움직인 방향은 마천루의 중심부였다. 그 사이 괴물들과 조우했지만, 마력을 최대한 억누르고 행동한 덕에 가까스로
별다른 충돌없이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마천루의 중심부가 가까워질수록 강대한 마력과 이를 동반한 열기가 느껴졌다.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마력으로
감싼 피부 위가 따가울 정도였다. 지면에서 뜨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던 스니프 케이의 발이 마침내 멈췄다.
무너진 벽면의 그림자에 등을 기대며 스니프 케이는 터져나오는 탄성을 간신히 억눌렀다.

마침내 발견한 사도의 알은 마천루의 짙은 그림자 아래에서도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가 아니었다.



용을 닮은 거대한 괴물이 보물을 수호하는 용처럼 알의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괴물의 깃털은 붉게 불타오르는듯 일렁였고, 간혹 내쉬는 숨에서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저 괴물이 열기의 원인임이 분명했다.

'히카르도는?'

사도의 알은 찾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히카르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미세한 혈흔이 바닥과 벽면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떡해야 하나? 사도의 알을 코 앞에 두고 스니프 케이는 고민에 빠졌다. 알을 지키고 있는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럴 때 잠깐 시선만 끌어줄 부하 하나만 있었더라도. 그걸 이용해 알을 가지고 도망친다는 작전이라도 세워볼 수 있었을 텐데. 생각에 깊이 빠진 나머지,
그는 순간 자신이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졌단 생각에 고개를 드는 순간, 개줄의 리더는 시야에 가득 찬 붉은색과 함께 자신의 몸이 거칠게 내동댕이
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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